우리나라는 정말 사교육 열풍인 거 같다. 물론 내 아이를 사교육 없이 키우고는 싶지만 주변에서 어느 학원을 보낸다는 얘기를 들으면 불안 해지는 건 사실이다. '잠 못 도는 초등 부모를 위하여'는 이런 나에게 조언을 해준 책이다.

느낀 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벌써 2달째에 접어들었다. 8살 아들은 하교 후 매일 1시간씩 태권도에서 친구들과 운동하고, 금요일만 1시간 20분 정도 미술 학원을 추가로 다녀온다.

 

학원이 끝나고는 놀이터에서 마음 맞는 아이와 1시간 정도 놀고 들어와 씻고 간식 먹고, 티브이나 유튜브를 1~2시간 보다가, 좋아하는 블록놀이나 종이접기를 한다.

 

하지만 엄마 눈에는 너무 놀기만 하는 것 같아 "이제 공부 좀 해야지", "책도 좀 읽자"면서, 주말 게임을 위해 평일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약속을 상기시키며 아이를 책상 앞으로 이끈다.

그렇다고 아이가 책상 앞에 앉는다고 바로 집중 모드가 되진 않는다. 엄마가 옆에 앉아 공부를 봐주더라도 몸이 비뚤어지고, 허리가 굽어지고 딴짓 하기가 일쑤다.

 

약 한달 간 집에서 국어 따라 쓰기 1쪽, 연산 문제집 2쪽, 사고력 수학 문제집 2쪽, 파닉스 2쪽을 풀어보도록 했는데, 내 자식 이건만, 아이를 가르치는 게 정말.. 쉽지 않음을 느꼈다.

 

점점 아이에게 실망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게 되고, 집중 못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해서,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감을 잃고 나와의 관계도 틀어지는 것 같아, 며칠 전 과감히 문제집 풀이를 끊었다.

대신, 책만은 열심히 읽자고는 해놨는데, 그러고서도 이게 맞는 건가, 다른 애들은 엄청 열심히 공부하던데, 어떤 게 우리 아이를 위한 걸까, 참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북클럽을 뒤져보다 발견한 이 책을 읽고, 8살 아이에게 결국 내 불안, 내 욕심을 투사했다는 결론이 났다.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잘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공부를 시키려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가 힘들고 재미없고 행복하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간과했다.

남에게,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내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고, 아이를 위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내 마음이 급해 허둥대고만 있었다.

 

당장 내년엔 아이가 알아서 하교 이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나에게 올해밖에 제대로 공부를 봐줄 시간이 없다는 사실에 쫓겨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를 해나갈지, 따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또 부모와 같이 의논하는 방향이 옳다는 건 알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초등까지는 그래도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겠지만 중등부터는 더욱 바빠질 텐데.. 사교육과 입시 제도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내 아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명하게 학원을 활용하고, 아이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돕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아이의 힘을 믿고, 먼저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고, 잘 지켜봐 줄 수 있는 단단한 엄마가 되기를. 정말..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좋은 어른이 되는 것도,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평생의 숙제.

인상 깊은 구절

학원에 진입할 때면 '내 자식을 알라'는 말도 잊지 마세요. 저는 아이 학원을 고를 때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관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 수준이 어떤지, 감정 상태는 어떤지 이런 걸 제대로 관찰해야 적극적인 해결 방안이 도출됩니다.

 

레벨 테스트는 불안감 마케팅의 일환입니다. 레벨 테스트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아이들 성적이 낮게 나오게 돼 있어요. 그래야 부모님들이 '내가 그동안 우리 애를 너무 공부를 안 시켜 이 모양이 됐구나. 앞으로는 잘 좀 가르쳐주세요' 라며 학원에 아이를 보내게 됩니다.

 

학업 성취도가 안정적으로 나오려면 학교 수업을 제대로, 충실히 복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학교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 학교 가방을 학원 가방으로 바꿔 메고 학원을 뺑뺑이 도는 식이라면 아이가 언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나요?

 

이쯤 되면 답이 나왔죠? 복습할 시간을 확보하려면 학원에 보내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기 학습을 관리하는 능력을 초등학교 때 어느 정도라도 길러줘야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초등학교 단계에서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가정에서 복습 지도를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함부로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풀 때는 반드시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음에 문제 풀이에 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란 게 뭘까요? 그건 바로 문제를 풀기 위한 준비, 곧 개념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뭘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죠. 외우는 건 기계나 하는 거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개념이 있어야 하고, 개념을 응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이걸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개념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죠. 이런 추론 능력은 수학을 통해 가장 잘 키워질 수 있습니다.

요새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게 되고, 자꾸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는 내 자신을 다잡기 위해 집어 든 책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때문에 부모가 생각하기에 안 좋은 방향의 언행이나 습관을 바로잡으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 좋은 방향을 알려줘도 귀담아듣지 않는 모습을 보이다가 또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나도 모르게 도끼눈을 뜨고 잔소리 폭탄을 마구 시전 하게 된다. 내 아이의 속마음은 어떤지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느낀 점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제 나름의 최상의 모습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주는 게 이상적인 부모이련만, 순간순간 그걸 잊고 만다.

'참을 인'자를 가슴에 여러 번 새기려 해도 못 참고 결국 욱-하고 올라오고 마는 일이 최근에도 여러 번. 이제 겨우 8살인데도 이러면 엇나가는 사춘기 때는 정말 어째야 하는 걸까 답답하다.

 

특히 다른 아이들보다 행동이 더욱 앞서는 아들이기에 최대한 마찰을 피하려면, 잔소리는 아끼고 아꼈다가 딱 한 번만 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정말.

 

한 번 말해서 알아들으면 애가 아니라 어른이다, 저 아이는 내 것이 아니다, 내 마음조차 맘대로 못하는데 저 녀석을 쉽게 바꿀 수 있을 리가 등등. 수없이 혼잣말을 반복하며 도를 닦는 자세로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비우는 일과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왜 도를 닦는 심정이라고 하는지 너무도 잘 알겠어서 눈물이 난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귀 기울여주고 긍정적으로 바라봐줘야 함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 노력해보려 한다. ​

 

아이가 긍정적인 자기상을 가지려면, 곁에 있는 가장 가까운 부모부터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야만 도움이 될 테니.

인상 깊은 구절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지 못하면 자기 자신이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나는 너무 속상해 죽겠는데 "별것도 아닌 일로 속상해하냐"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받지 못한다는 서운함에 마음을 닫기 쉽다.

때로는 '내가 이상한가?'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아이의 모든 감정을 소중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이가 "나 기분 좋아! 즐거워"라고 말할 때 비난하지 않듯이 "나 슬퍼! 속상해! 화났어"라고 할 때도 그 감정과 표현을 존중해줘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감정 사용법이다.

 

아이가 감정이 보내는 메시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건강한 방향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나'의 영역을 확장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경험을 쌓는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세상에 내딛는 한 걸음은 바로 '자기 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시기에 이러한 태도를 제대로 기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서툰 행동에 대해 꾸중을 듣거나 선택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으면, 아이는 좌절감을 느끼거나 수치심마저 겪기 쉽다.

칭찬과 인정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아이는 자기 자신이 꽤 괜찮은 존재이며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긍정적인 이미지는 무엇을 선택하거나 시도할 때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작용한다.

 

즉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가는 데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주효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랑을 '그저 주기'만 해서는 아이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다. 사랑을, 정확히 말하면 '나를 사랑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아이야말로 스스로를 믿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마음의 병을 우울증으로만 진단하고, 그 증상에 약을 처방하는 의사일수록 오히려 사람을 환자로 대하게 되므로 깊은 공감이 어렵다고 한다. '당신이 옳다'는 책에서와 같이 공감은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다.

느낀 점

자격증 없는 보통의 사람들도 '공감'을 무기로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의 기본이라 느껴진다.

하지만 '공감'이라는 것에 대한 정체가 애매모호하다 보니, 이 책에서는 공감이 어떤 자세인지,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여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한 번을 다 읽고 나면 어렴풋이 어떻게 마음을 살펴봐야 하는지, 어떻게 지지하고 공감해주어야 하는지 느낌 정도는 온다.

내 마음을 이해하고 제대로 마주할 수 있어야 공감도 가능하다. 그러니 앞으로 내 마음을 수시로 살피고, 보듬어줘야 맞다. 감정에도 긍정적/부정적 딱지를 붙이지 않고 어떤 감정이든 일단 수용하려는 자세도 중요함을 알게 됐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 아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큰지. 그리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과 '알고만 있는 것'의 차이 또한 얼마나 큰지..

공감이 필요한 날, 또는 공감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날 다시 꺼내 한 번씩 정독을 해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공감의 실체를 알고 삶에 적용할 수 있으면 많은 경우 전문가를 찾지 않고도 치유받고 치유해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공감을 해부학자처럼 낱낱이 펼쳐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어떤 문제를 털어놓고 내 기분과 느낌이 어땠는지에 대해 하소연하며 누군가와 깊은 얘기를 나눌 때, 막상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을 누구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바로 공감이고 치유였을 터. 나에게도 너에게도 꼭 필요한 그것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며, 서로를 구하고 또 기대며 살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왔으면 좋겠다.

인상 깊은 구절

이제 나는 삶의 고통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의학적 관점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사람의 속마음을 보듬고 건강한 성찰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질병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적 시선과 태도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 스스로를 돕고 가족이나 이웃도 직접 도울 수 있는 적정한 심리학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스 부호 같은 급전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사람은 괜히 집을 나가지 않으며 괜히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하물며 괜히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는 없다. 그런 얘기를 꺼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백 가지 이상은 찾아본 이후다.

 

그래서 나는 언제든 우선적으로 그 마음을 인정한다. 그런 마음이 들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당신 마음은 옳다고. 다른 말은 모두 그 말 이후에 해야 마땅하다. 그게 제대로 된 순서다. 사람 마음을 대하는 예의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펙이 감정이다.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향, 취향 등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지만 그것들은 존재의 주변을 둘러싼 외곽 요소들에 불과하다.

 

핵심은 감정이다. 내 가치관이나 신념, 견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내 부모의 가치관이나 책에서 본 신념, 내 스승의 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시간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대화. 그것을 했던 것이 얼마나 오래전인지 모르겠다. 좋은 대화와 말들이 쌓여 사람의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인데, 그 힘을 잊어버리고 산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를 읽고 간단히 정리해 본다.

느낀 점

시간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대화. 그것을 했던 것이 얼마나 오래전인지 모르겠다. 좋은 대화와 말들이 쌓여 사람의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인데, 그 힘을 잊어버리고 산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관계 자체는 원만했지만,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의 단짝이라 칭할 친구는 적었다. 여러 친구들과 두루두루 어울려 지내긴 했지만, 정말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느낌을 주고받는 사람은 거의 없었달까.

 

말하기보다는 듣는 편이 익숙해서 많은 친구의 고해성사(?)나 고민 상담을 해주기도 했는데, 정작 내 속마음을 훌훌 털어내며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내게도 중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근무까지, 그 시절에 따라 다행히 마음이 맞는 사람 한두 명쯤은 꼭 있어서, 자주는 아니지만 시간을 잊고 깔깔거리며 수다를 떠는 기쁨과 희열을 알고는 있다.

물론 지금은 그 관계마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약해져, 내 쪽에서 먼저 연락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주변에 사람이 많고 늘 관리를 하는 남편과는 좀 대조적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크고 작은 애경사에 친구들을 부를 일이 있을 땐 좀 민망한 상황도 연출된다. 남편 쪽은 가족부터 친구까지 사람이 우글우글 많은 반면, 내 쪽은 너무나 조용해서..

 

흔히 주변에 얼마나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인생을 잘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가 평가되기도 하는데, 그 기준에서 본다면 나는 잘 못 살아온 편에 속한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게 막 후회되거나 쪽팔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마음에도 없는 관계를 양산하고 지속하며 불편하고 스트레스받느니 혼자가 낫다는 생각에서다. 특공대, all or nothing, 너무 뼛속까지 전갈 자린가.

그래도 가끔씩은 아무 때고 생각날 때 전화해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를 할 수 있는 편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상황과 비슷하면서도 성향이 잘 맞는 이와의 우정이 나이가 들수록 고프다.

 

이 책은 "말"과 "마음"의 관계, 나아가 그것이 "인간관계"에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거칠고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조곤조곤, 따뜻한 어조로.

일상과 사람에 지쳐 나와의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나, 다른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자주 상처를 받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좋은 말과 글을 곁에 두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을 듯.

인상 깊은 구절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에 가장 힘들어하는지, 또는 어떤 말이나 행동에 유난히 예민한지를 '스스로 아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덜어낼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보다 '조금 나은' 선택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말이 뒤섞이는 희열을 맛보고 싶은 마음, 서로 통했다는 안도감, 혹은 다름에서 오는 재미와 호기심, 말이 오가는 중에 느껴지는 깊은 우정과 위로를 원한다.

 

그래서 남의 말에 마음을 다치고 아파하면서도 여러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대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국어공부는 왜 해야 할까요?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종종 생기는데요. 억울하고 답답할 때마다 화를 내고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 국어가 필요해요.

 

억울하지 않게 자기 생각을 잘 말하고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어야 하니까요. 저도 그런 이유로 국어를 공부합니다." 대화는 단순히 말과 말이 오가는 행위가 아니다. 말로 표현될 뿐 속은 전혀 다르다. 말과 말은 입장과 '다른 입장'이, 지식과 '다른 지식'이, 지혜와 '다른 지혜'가 만나는 일이다.

 

무의식이 무의식을, 역사가 역사를, 환경이 환경을 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경험과 경험이 만나는 행위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통찰에서 나온 '나의 말'보다는 유명한 말, 검증된 말, 쓰인 말, 인정받는 말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채 '주워들은 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의 말'을 잃은 채 살다 보면,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살게 된다. 나의 것이 훨씬 더 값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것을 추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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