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발견하는 현상이 있다. 아이의 독서 취향이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 10권의 책을 읽어준다면 적어도 2~3권은 어제도 읽고, 그제도 읽은 책이다. 그리고 읽었던 책을 또 읽는 것은 아니지만 한 분야의 책만 고집하는 아이도 상당히 있다.
흔히 독서 편식이라는 현상이다. 독서 편식 때문에 고민하고, 처방을 교류하는 부모들이 꽤 있다. 물론 교정해야 할 독서 편식이 있다. 학습만화만 끼고 있거나, 퍼즐북이나 캐릭터가 가득한 컬러링북만 보는 경우다. 이런 식의 독서 편식이 나쁜 이유는 이것들은 사실상 독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실제 책 읽기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독서 편식은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독서 편식을 하는 이유
독서 편식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확실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기 취향이 뚜렷한 것을 우리는 개성이라고 하며, 개성이 강한 아이는 주특기가 있고 마음의 에너지도 강하다. 아이가 뭔가에 열광한다면 쾌재를 부를만한 일이다. 아이가 뭔가에 미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졌다는 강렬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는 학습 측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독서 편식을 하는 아이들은 몰입해서 책을 읽는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는 공룡 책만 읽고, 어떤 공룡 책은 매일 반복해서 읽는다. 장난감도 공룡 장난감만 산다. 이 공룡 전문가는 알아서 숙련된 독서가로 성장하는 중이다. 각종 공룡의 특징에서부터 공룡이 살았던 시대의 지질학적 특성, 공룡의 등장과 멸종 이유 등 공룡에 관한 고급 지식을 상호 연결하면서 내면화한다.
이 아이가 뛰어난 공부머리를 갖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공룡 책만 읽으면 안 돼, 다양한 책을 읽어야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이제 이런 책들도 읽어보자, 알았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보자. 하지만 아이가 지금까지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책이 공룡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좋아하지도 않고, 흥미도 가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 책이 제대로 읽힐 리가 없다. 그렇게 즐거웠던 독서가 숙제로 변하고 말았으니 실망과 낙담을 감출 수 없고, 아이는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독서 교육의 실패 원인
첫째는 자기가 그토록 신나게 탐험했던 공룡이라는 관심사가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는 있었지만, 나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이었다고 여기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이후로 자기 안에서 떠오르는 흥미나 호기심들을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지적 열정과 호기심이 시들게 된다.
둘째는 독서가 공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서는 더 이상 자기가 관심이 가는 것을 탐구하는 즐거운 놀이가 아니다. 능력을 골고루 개발하기 위하여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억지로 읽어야 하는 학교 공부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 결과 아이는 책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골고루 읽힌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독서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호기심과 지적 열정이 없는 독서는 아이에게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서 편식을 막겠다는 것은 숙련된 독서가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앞길을 막는 것과 같다. 독서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다. 독서 편식을 한다는 것은 뭔가에 열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좋아하는 게 없는 것이 문제지, 뭔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 지식 도서 탐독 유형 중의 하나인 '마니아'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의 편식은 그 기간의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을 뿐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반드시 다른 영역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지식은 별개의 단일한 체계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 도서를 읽게 만드는 힘이 호기심이듯, 호기심이 다른 분야의 책으로 넘어가게 하는 힘이 된다.
예를 들어 공룡 책을 읽다 보면 궁금증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공룡은 왜 이렇게 클까?'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은 어디서 날아왔을까?' '선캄브리아기, 백악기 같은 지질 시대는 어떻게 나누는 걸까?' 등등 다양한 종류의 궁금함이 떠오른다. 물론 어떤 질문이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가는 아이마다 다르다.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은 저마다 다르게 태어난다. 침팬지는 숲에 있을 때 빛나고, 사자는 사냥을 할 때 힘이 넘친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아이는 사업가로, 어떤 아이는 선생님으로, 또 어떤 아이는 학자로 태어난다. 침팬지에게 사냥을 하라거나, 사자에게 풀을 뜯어먹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부모가 원하는 꿈을 아이에게 주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아이가 어떤 재능을 타고났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은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독서 편식을 하는 아이들은 쉽게 알 수 있다. 지질학을 좋아한다면 지질학에 심취하게 두면 된다. 그다음은 그다음에 가서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