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일종의 사용설명서로 여기는 유형이다. 무언가를 배울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바둑을 배우기로 했다면 바둑 이론서를 먼저 읽고, 컴퓨터를 새로 샀으면 컴퓨터 이론서를 섭렵하는 식이다. 초등 저학년 때 그 특징이 나타나는 세 가지 유형과는 달리 활용형은 보통 청소년이 되어서 그 특징이 발현된다.

활용형 유형의 특징

대부분의 실용서가 성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른 세 유형과 마찬가지로 활용형도 언어 능력이 높다. 실용적인 정보 위주의 독서이기 때문에 교과 관련 지식이 쌓인다거나, 세계관이 성장하는 효과는 거의 없지만 공부머리의 상승효과만큼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독서의 목적상 책을 사용설명서 읽듯 꼼꼼하게 구체적인 정보를 기억해가며 읽기 때문이다.

 

활용형은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하기 위해 만전을 기한다. 중요한 부분은 표시해두었다가 거듭해 읽기도 하고, 필요하면 따로 정리해서 외우기도 한다. 활용형에게 독서는 책 속의 정보들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파악하는 훈련인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하고 파악한 지식을 곧바로 실전에서 써본다. 이 과정에서 활용형은 자신이 어떤 부분을 잘못 파악했는지, 어떤 부분을 파악하지 못했는지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추가 독서를 한다. 이 경우 글 속의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는데 그 위력은 예상외로 커서 교과 학습에 매우 큰 효율성을 발휘한다.

 

지식 도서 탐독가의 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유형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지식 도서 탐독가는 자발성에 의해서만 태어날 수 있고, 그 자발성의 근원은 호기심이라는 사실이다. 활자 중독형은 세상 모든 지식을 궁금해 하고, 탐구형은 마음속에서 떠오른 호기심을 쫓는다.

 

마니아형은 열광하는 분야에 대한 활화산 같은 호기심을 품고 있으며, 활용형은 자신이 새롭게 발을 내딛는 분야를 알고 싶어 한다. 모두가 자발성과 호기심이 짝을 이루어 이륙한다. 이런 지식은 알아야 한다거나 이런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자발성과 호기심의 짝은 사라지고 만다.

제대로 읽은 지식도서 한 권의 힘은 엄청나다. 그래서 '오늘부터 지식 도서를 읽혀야지'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욕으로 밀어붙이면 백이면 백으로 실패하게 된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책을 뽑아들지 않는 한 책을 읽힐 수 없고, 강제로 밀어붙이면 아이는 책을 싫어하게 되어 독서교육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호기심을 자극해 독서하기

호기심은 지식 도서 읽기의 엔진이다. 엔진 없는 차가 움직일 수 없듯이 호기심이 없는 아이는 지식 도서를 읽을 수 없다. '바둑은 어떻게 두지?'라는 실용적인 호기심에서부터 '지렁이는 왜 다리가 없을까?'라는 생물학적 호기심, '로봇은 어떻게 움직일까?'라는 특정 분야에 대한 호기심까지 그게 무엇이든 궁금증이 있어야 한다. 물론 호기심이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읽으면 책을 읽는 동안 생각을 하지 않게 되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지식을 받아들이지도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다. 유아나 초등학생에게 매일 할당량을 정해 책을 읽히거나 반강제로 읽히는 방식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효과도 없을뿐더러 아이가 영원히 책을 싫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대체로 지식 도서를 읽지 못한다.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호기심을 가진 아이가 거의 없다. 마치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제거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 같다. 아이들과 얘기를 해보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저, 그거 알아요!'이다.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아이들은 다 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는 것이 많다. 수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있다. 하지만 그 정보는 '원인'이 제거된 '결과'만이고, 지식의 블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이는 '안다'라고 생각한다.

 

다 아니까 궁금하지도 않고, 호기심도 없다. 심지어 아이들은 모르는 것도 안다고 한다. 뭔가를 모르면 자존심이 상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많은 것을 안다고 믿고, 모르는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그 무엇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유추된다.

지식에 대한 잘못된 생각

첫째, 너무 일찍 공부를 시작한다. 초등 1, 2학년 교과서에 지식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나이에는 지식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수록 지식을 이해하기 힘들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단순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전집을 통해 과학, 역사, 사회, 정치에 대한 지식을 두루 섭렵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복잡한 지식을 단순화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민주주의는 투표하는 것' '빅뱅은 꽝 터지면서 우주가 생겨난 것'하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6,7세 아이가 민주주의와 빅뱅의 발생 원인을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눈높이에 맞지 않는 지식을 주입하면 아이는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안다'라는 잘못된 사고 체계를 내면화한다. 사고 체계 안에 '원인'이 사라졌으니 대상에 대해 궁금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잘못된 칭찬이다. 아이가 '빅뱅'이나 '민주주의'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 어른들은 그것을 학습의 효과『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와, 그런 것도 알아? 정말 똑똑하네!'라고 칭찬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정말 똑똑하다고 믿게 된다. 더불어 지식이란 빅뱅이나 민주주의 같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해도 안 되는 용어들을 계속 머릿속에 넣게 되고, 그 덕분에 똑똑하다는 칭찬도 계속 듣는다. 사실은 제대로 된 지식이 아니라 얇디얇은 정보를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말이다.

호기심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지 않는다.

지식 도서를 읽어주며 '지구가 둥글다니 참 신기하지 않니?'라고 물어본다고 해서 아이의 호기심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거다. 호기심은 아이가 발견하는 것이다. 비 오는 날 지렁이를 발견했을 때 '이 지렁이들이 어디서 나왔지?'하고 떠오르는 것이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아이가 세상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떠오른다. 학습은 정반대다. 호기심은 아이 내부에서 나오지만, 학습은 외부에서 들어온다.

호기심이란?

호기심은 능동적이고, 학습은 수용적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영어는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상한 지식이다. 수학이나 지식 전집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눈높이에 맞지 않는, 생뚱한 지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지식이 외부로부터 쏟아져 들어온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수용하는 사고'를 내면화한다. 사고의 기본 틀이 호기심과 정 반대의 방향으로 고정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경우 아이는 학습을 자기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 왜 배우는지 모르겠고 재미없으며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느낀다. 그 결과 주어진 학습, 해야만 하는 학습만 하려는 방어적 태도를 반사적으로 취하게 된다. 당연히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호기심도 위축된다.

 

호기심이라는 연약한 싹이 학습이라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이렇게 한번 뿌리가 뽑히고 나면 아이의 호기심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다시 싹트기 힘들다. 핀란드 교육 당국은 이와 같은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유년기 학습을 제도적으로 금지했다.

 

영유아기에 쌓은 불완전한 지식은 대부분 큰 효용이 없다. 지금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영유아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놀이이다. 놀이터에서, 모래밭에서, 계곡에서 아이는 세상을 만난다. 놀이의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눈높이로 세상을 관찰한다. 그러면서 자기 눈높이에 맞는 의문을 품게 된다. '모래는 뭐지?' '달팽이도 뼈가 있을까?' 같은 것들 말이다.

호기심을 길러주는 건 매우 중요

이것이 바로 호기심이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호기심을 잘 길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호기심이 학습을 놀이로 만들어주고,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영유아기 때 뭘 배우면 안 된다. 아이에게 세상을 관찰할 충분한 시간을 주고, 아이가 질문을 던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개미는 왜 땅속에 살아?' 어느 날 아이가 이렇게 묻는다면 이렇게 되물어준다.

'네 생각은 어때?' 정답을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원인과 결과를 한 세트로 하는 지식 구조적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나무보다 땅이 파기 쉬어서?' '와우, 진짜 그럴 수 있겠네, 이따가 확인해 보자'

그리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개미의 생태를 다룬 그림책을 읽어준다. 그 책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두 가지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진짜 학습의 경험이다. 자기 주도적이고, 호기심이 충족되는 즐거운 학습이다.

 

이를 통해 아이는 학습에 대해 올바르고 긍정적인 관점을 갖게 된다. 다른 하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책을 보면 된다'라는 개념이 생기는 것이다. 호기심을 지식 도서로 충족하는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는 궁금할 때마다 책을 찾아보게 된다. 매일 할 필요는 없다. 평소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이따금 아이가 호기심을 보일 때 지식 도서를 보여주면 된다. 이것이 바로 영유아기 최고의 교육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발견하는 현상이 있다. 아이의 독서 취향이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 10권의 책을 읽어준다면 적어도 2~3권은 어제도 읽고, 그제도 읽은 책이다. 그리고 읽었던 책을 또 읽는 것은 아니지만 한 분야의 책만 고집하는 아이도 상당히 있다.

 

흔히 독서 편식이라는 현상이다. 독서 편식 때문에 고민하고, 처방을 교류하는 부모들이 꽤 있다. 물론 교정해야 할 독서 편식이 있다. 학습만화만 끼고 있거나, 퍼즐북이나 캐릭터가 가득한 컬러링북만 보는 경우다. 이런 식의 독서 편식이 나쁜 이유는 이것들은 사실상 독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실제 책 읽기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독서 편식은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독서 편식을 하는 이유

독서 편식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확실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기 취향이 뚜렷한 것을 우리는 개성이라고 하며, 개성이 강한 아이는 주특기가 있고 마음의 에너지도 강하다. 아이가 뭔가에 열광한다면 쾌재를 부를만한 일이다. 아이가 뭔가에 미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졌다는 강렬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는 학습 측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독서 편식을 하는 아이들은 몰입해서 책을 읽는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는 공룡 책만 읽고, 어떤 공룡 책은 매일 반복해서 읽는다. 장난감도 공룡 장난감만 산다. 이 공룡 전문가는 알아서 숙련된 독서가로 성장하는 중이다. 각종 공룡의 특징에서부터 공룡이 살았던 시대의 지질학적 특성, 공룡의 등장과 멸종 이유 등 공룡에 관한 고급 지식을 상호 연결하면서 내면화한다.

 

이 아이가 뛰어난 공부머리를 갖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공룡 책만 읽으면 안 돼, 다양한 책을 읽어야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이제 이런 책들도 읽어보자, 알았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보자. 하지만 아이가 지금까지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책이 공룡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좋아하지도 않고, 흥미도 가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 책이 제대로 읽힐 리가 없다. 그렇게 즐거웠던 독서가 숙제로 변하고 말았으니 실망과 낙담을 감출 수 없고, 아이는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독서 교육의 실패 원인

첫째는 자기가 그토록 신나게 탐험했던 공룡이라는 관심사가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는 있었지만, 나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이었다고 여기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이후로 자기 안에서 떠오르는 흥미나 호기심들을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지적 열정과 호기심이 시들게 된다.

 

둘째는 독서가 공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서는 더 이상 자기가 관심이 가는 것을 탐구하는 즐거운 놀이가 아니다. 능력을 골고루 개발하기 위하여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억지로 읽어야 하는 학교 공부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 결과 아이는 책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골고루 읽힌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독서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호기심과 지적 열정이 없는 독서는 아이에게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서 편식을 막겠다는 것은 숙련된 독서가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앞길을 막는 것과 같다. 독서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다. 독서 편식을 한다는 것은 뭔가에 열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좋아하는 게 없는 것이 문제지, 뭔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 지식 도서 탐독 유형 중의 하나인 '마니아'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의 편식은 그 기간의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을 뿐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반드시 다른 영역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지식은 별개의 단일한 체계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 도서를 읽게 만드는 힘이 호기심이듯, 호기심이 다른 분야의 책으로 넘어가게 하는 힘이 된다.

 

예를 들어 공룡 책을 읽다 보면 궁금증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공룡은 왜 이렇게 클까?'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은 어디서 날아왔을까?' '선캄브리아기, 백악기 같은 지질 시대는 어떻게 나누는 걸까?' 등등 다양한 종류의 궁금함이 떠오른다. 물론 어떤 질문이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가는 아이마다 다르다.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은 저마다 다르게 태어난다. 침팬지는 숲에 있을 때 빛나고, 사자는 사냥을 할 때 힘이 넘친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아이는 사업가로, 어떤 아이는 선생님으로, 또 어떤 아이는 학자로 태어난다. 침팬지에게 사냥을 하라거나, 사자에게 풀을 뜯어먹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부모가 원하는 꿈을 아이에게 주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아이가 어떤 재능을 타고났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은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독서 편식을 하는 아이들은 쉽게 알 수 있다. 지질학을 좋아한다면 지질학에 심취하게 두면 된다. 그다음은 그다음에 가서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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