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찾아오는 1차 급변동 구간은 원인과 양상이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하다. 중등 교과서의 언어 수준보다 아이들의 언어능력이 낮기 때문에 성적 하락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등 1학년 때 찾아오는 2차 급변동 구간은 훨씬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양상을 띤다.
언어능력과 성적 관계
언어능력뿐 아니라 멘털과 공부 요령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아주 혼란스러운 성적 변동이 일어나고, 과장해서 말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리고 이 혼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멘털'이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이들은 겪은 적이 없는 스트레스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내신 성적이 입시와 직결된다는 압박감, 친구들과의 성적 경쟁에 대한 회의감, 학교 공부 자체의 어려움, 잘하는 그룹과 못하는 그룹에 대한 차별 등이 아이를 옥죄어 온다. 중학교 때는 부모가 애를 태웠다면 고등학교 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서 아이가 더 심각해진다. 공부를 하려면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멘털이 강한 아이는 정면 돌파를 하지만 멘탈이 약한 아이는 심리적 회피 상태에 빠진다. 회피의 강도는 각자 다르다. 공부에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미온적인 경우부터 아예 공부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경우까지 다양하다.
고등학교 성적이 떨어지는 유형
고등 1학년 때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여전히 중학생' 유형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들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런데 '여전히 중학생' 유형에게는 이런 심리적 변화 단계가 없다. 심리적 변화가 없으니 학습 태도의 변화도 없다.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시계 추처럼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TV를 보고, 게임을 한다. 평소에는 따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험공부 기간이 시험 전 2~3주에서 4~5주로 늘어난다는 정도다.
그런데 막상 시험공부를 해보면 감당이 안 된다. 중학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렵고, 학습량도 많기 때문이다. 어, 어, 어하다가 시험을 치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성적표를 받게 된다. 이 유형의 진짜 문제는 성적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성적이 떨어진 후의 대응 자세이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체념을 해버린다.
고등학교 공부는 정말 어렵구나 하고 반포기 상태로 접어들어 버리는 것이다. 다시 성적이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간단하다. 먼저 이 아이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다니고, 숙제도 열심히 하고, 시험기간 전 4~5주 동안 미친 듯이 공부했다.
어떻게 더 열심히 하란 말인가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면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설명을 듣는 방식으로 공부를 해왔다.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이해한 후 암기해서 머릿속에 넣는 프로세스로 공부를 진행해온 잘못된 관념이 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거둬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고등 교과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그러기에 고등 교과 과정은 너무 어렵고, 양도 많다. 그런데 아이가 아는 공부법은 이것뿐이고, 하던 대로 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감당이 안 되니 아이도 답답할 따름이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이가 생각하기에 고등학생이 되어 성적이 덜어진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당연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선생님이나 지도법이 안 맞는 강사, 나아가 더 뛰어난 사교육을 시켜주지 못하는 부모의 책임으로까지 떠넘긴다.
고등학생이라고 하기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겁하고 유아적인 심리를 보인다. 몸은 다 자라서 어른이나 다름없는데 생각은 초등학생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퇴행적이다.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이 내놓은 결과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 정도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선생님이 못 가르친다고 해도 그건 자신을 둘러싼 여러 변수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정도의 판단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심리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데 있다. 물론 아이들이 이렇게 미성숙한 것은 아이들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이들의 이런 사고방식은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학습되고 체화된 것이다. A 영어학원을 다니다가 더 잘 가르친다는 B 영어학원으로, C 수학학원을 다니다가 더 뛰어나다는 D 수학학원으로 옮겨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사고방식일 뿐이다. 내가 영어, 수학을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나를 잘못 가르친 선생님들의 책임인 것이다.
마무리
결국 이 유형의 아이들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공부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으며,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의 개념도, 객관적인 상황 판단 능력도 누가 알려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깨달아야 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성숙함이 필요하다. 전인교육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거나 육체적으로 튼튼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야 함을 의미한다. 정신적인 성숙함이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