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 시절에 몸으로 체화해야 할 단 하나의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지식은 원인과 결과의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며, 그 지식 블록의 완성을 위해서는 모든 것에 '왜?'라고 물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외우는건 큰 의미가 없다.

어려서부터 지식의 구조를 내면화하지 못한 아이, '왜?'라고 물을 수 없는 아이는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 지식을 만나면 그냥 외운다. 지식이 아니라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입수한 정보는 맥락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되고, 기억한다 해도 암기력 향상 말고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학교 공부와 연결해서 얘기하면 지식의 구조를 내면화하지 못한 아이는 사회, 과학계열 공부를 잘하기 힘들다. 지식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고, 단련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외우는 수밖에 없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미가 없으며 고통스럽다. 설령 객관식 문제는 잘 푼다 하더라도 서술형 문제에서는 틀릴 가능성이 높다. 수능시험에서는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수능은 '네가 아는 지식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를 묻기 때문에 지식을 상호 연결하지 못하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다. 공부 외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들은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경우가 많다.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원인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을 입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고, 새로운 돌파구도 마련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공교육은 '왜?'라고 묻기 힘든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사실을 알려주지만 원인에 대해서는 큰 공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식의 기본 구조를 무시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결과만 알려주고 '기억하라'라고 하는 교육을 주입식 교육이라고 한다. 주입식 교육의 문제는 지적 능력이 발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공교육 위기의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교육제도를 자꾸 바꾸는 것은 이런 공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핀란드의 교육 수준

핀란드의 교육이 우수한 이유는 지식의 구조화를 공교육 시스템 안으로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읽은 후 연관된 과제를 주고 그 과제를 지식 도서를 읽으며 해결하는 수업, 교과서를 통해 접한 정보의 원인을 지식 도서를 통해 규명하는 수업 등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지식의 나무를 머릿속에 심게 되고, 이 나무들이 숲을 이루게 된다. 지식의 숲을 가진 아이는 새로운 지식을 접했을 때 능숙하고 재빠르게 처리하고 정리할 수 있다. 하나의 지식 체계를 처리해 본 아이는 낯선 분야의 지식 체계도 쉽게 처리한다. 어학도 예외는 아니다. 어학 학습 과정 역시 지식의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활자 중독형은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읽는 유형이다. 쉽게 말하면 도서관 서가의 A열부터 Z 열까지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다 읽어버리는 식이다. 발명왕 에디슨,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 도서관을 정복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열정이 필요하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때 퇴학을 당하는 바람에 시간과 열정을 얻을 수 있었고, 빌 게이츠는 도서관에서 미친 듯이 책만 읽다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다.

 

일론 머스크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도 저 혼자 독서를 하는 기행을 일삼았고, 그 결과 청소년이 되기도 전에 읽은 책이 만권을 돌파했다. 경위야 어떻든 도서관 어린이실을 통째로 정복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독서를 하면 아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인재가 된다. 만약 어떤 아이가 어린이실에 비치된 역사책 전부를 제대로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활자 중독형 유형의 특징

한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는다는 것은 그 분야의 지식을 반복 확장해서 학습함을 의미한다. 한국사 통사 책을 한 권 읽으면 아이는 한국사의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도서관에는 한국사 통사 책이 수십 종 넘게 비치되어 있다. 담고 있는 지식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 조금 다른 강조점, 조금 다른 서술 방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수십 종에 이르는 한국사 통사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국사 통사 지식을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수십 번 반복 학습하는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교과서를 달달 외어 습득한 지식과는 전혀 다른 입체적이고도 해박한 지식을 얻게 된다.

 

처음 통사 책을 읽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구나' '고구려에는 광개토 대왕이라는 왕이 있었구나'하고 새로운 사실을 접한다. 처음 통사 책을 읽을 때는 다른 관점, 다른 서술 방식으로 같은 지식을 다시 습득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첫 번째 통사 책을 읽는 과정에서 획득했던 지식을 강화하고, 놓쳤던 지식을 새롭게 입력하게 된다. 처음 읽을 때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활약했다는 것만 알았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임진왜란이 조선 중기에 일어났고, 50년 후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한국사 지식의 커다란 퍼즐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6~7권의 한국사 통사 책을 읽고 나면 아이는 한국사 지식에 능통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책들 사이에 서로 다른 관점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스무 권, 서른 권을 읽고 나면 사건들의 상호 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다. 아이의 머릿속에 한국사 통사라는 지식 체계 하나가 완전한 형태로 세워지는 것이다. 이제 아이는 자기가 원할 때 언제든지 그 지식을 꺼낼 수 있고, 심지어 자기가 원하지 않을 때도 툭툭 튀어나온다. 한국사 지식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식을 생각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이점이자 성장이다. 머릿속에 하나의 지식 체계를 완벽하게 입력해두면 그 지식 체계를 활용해 만사를 곱씹을 수 있다. 이렇게 곱씹는 과정에서 아이는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와 완전히 일체화된 살아있는 지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지식은 다른 유형의 역사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반복 학습됨과 동시에 세밀하게 된다. 아이는 시대 배경을 훤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세종대왕과 광개토왕 위인전을, 유물에 관한 책을 읽게 되며 지식은 상호 연결되고 강화된다. 어린이실의 역사 서가를 정복할 때쯤이면 아이는 준전문가급의 지식 체계를 갖추게 되며, 이는 단순히 지식이 많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수많은 정보를 상호 연결해 복잡다단한 하나의 지식 체계를 머릿속에 넣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처리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향상된다. 이런 방식으로 문학, 과학, 사회, 철학 분야의 도서를 독파하면 아이가 쓸 수 있는 생각의 재료가 점점 늘어난다. 역사의 지식 체계를 머릿속에 넣은 아이가 읽는 문학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읽는 문학과는 전혀 다르다.

 

역사와 문학을 독파한 아이가 읽는 과학 책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읽는 과학 책과는 전혀 다르다. 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지식 분야가 머릿속에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런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전혀 다르다.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지식 네트워크를 이용해 해석할 수 있고, 그 해석의 과정을 통해 지식을 강화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통섭적인 인재, 세상을 읽는 눈을 가진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탐구형은 호기심에 이끌려 책을 읽는 형이다. 활자 중독형이 방사형 독서를 한다면 탐구형은 선형 독서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바람개비를 무척 신기해했다. 그래서 한동안 바람을 다룬 책을 읽었다. 바람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이번엔 바람의 힘을 이용한 요트나 돛단배가 궁금해졌다.

탐구형 유형의 특징

그래서 요트나 돛단배를 다룬 책을 읽었고, 항해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탐구형은 이런 식으로 호기심을 쫓아가며 책을 읽는다. 독서를 통해 호기심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지식이 쌓이고, 지식이 쌓이는 과정에서 다시 호기심이 생기는 독서 방식 자체가 '지식의 구조'와 꼭 닮았다. 탐구형은 공격적인 독서를 한다. 책을 읽는 원동력이 호기심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왜?' '어떻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발생하는 사고思考의 양이 많고, 책 속의 지식도 깊이 흡수한다. 또 탐구형은 종종 본인의 언어능력을 몇 단계 뛰어넘는 괴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현대 기계 문명은 어떻게 시작했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는 어린이책을 통해 '기계 문명은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만들면서 시작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호기심이 풀리지 않는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제임스 와트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증기 기관의 발명에 도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면 '그전에는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증기 기관을 왜 그때는 여러 사람이 만들려고 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렇게 의문을 쫓다 보면 아이는 결국 어린이책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언어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책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 청소년용 도서, 심지어는 성인용 도서까지 지평을 넓히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또래의 수준을 넘어서는 언어능력과 지식,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을 탑재하게 된다. 만약 아이의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면 아이는 결과적으로 활자 중독형과 마찬가지로 전 분야의 지식을 폭넓고, 깊게 쌓게 될 것이다.

 

사실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독서 이력을 본다는 것은 탐구형 독서가의 선형 독서, 다시 말해서 독서 목록을 통해 아이의 지적 호기심이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는가를 보겠다는 뜻이다. 서울대 입학처장이 추천도서를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를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학생의 지적 여정'을 보려고 한다고 매년 강조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은 고등학생 필독서 목록 위주로 독서 이력을 작성한다.

활자 중독형이 팔방미인, 탐구형이 지식 탐험가라면 마니아형은 한 우물만 파는 특정 분야 전문가이다. 아이들은 모두 마니아형이 될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라면 누구나 각자 흥미로워하는 분야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어떤 아이는 로봇이나 비행기를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공룡이나 화산을 좋아한다.

마니아 유형의 특징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관심사를 잃어버리게 된다. 어른들이 아이의 관심사를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한 분야만 좋아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가 돈에 열광한다고 가정해 보자.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경제에 관한 책을 읽고, 투자나 창업, 주식 같은 것에만 관심을 두고 다른 책은 손도 안 대려고 한다. 이 경우 부모들은 당연히 걱정을 하게 된다.

 

어린아이가 돈, 돈 하는 것도 마땅하지 않고, 지금 돈에 관해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하는 돈에 대해서도 마음에 안 드는데 공룡, 로봇에 열광하면 정말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다. '그런 책 읽을 시간이 있으면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어라!'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눈에는 아무리 한심해 보이는 분야라도 아이들이 열광하는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설령 그 지식이 정말 쓸모가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 강렬한 관심사가 지식 도서를 읽는 힘이 되어주고, 더 나아가 언어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기 때문이다. 로봇을 좋아해서 로봇 책만 읽는 아이에게 원하는 대로 책을 공급해 준다면 그 아이는 이내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로봇 책을 독파하게 될 것이다. 만약 로봇에 대한 흥미도가 높아 멈추지 못한다면 아이는 기계 공학으로 관심사를 확장하거나 좀 더 높은 수준의 로봇 공학 책을 읽게 될 것이다.

 

진정한 마니아라면 독서의 지평이 양방향으로 확장된다. 기계 공학을 읽으면서 동시에 수준 높은 로봇 공학 책을 읽거나 아니면 로봇이 등장하는 이야기책도 포함된다. 이런 방식으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청소년용 도서를 넘어 성인용 도서까지 정복한다면 아이는 또래를 압도하는 언어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마니아 형에게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마니아 형의 강렬한 관심사는 강렬한 꿈을 낳는다. 이것은 뛰어난 사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마오쩌둥은 혁명가와 영웅들의 전기를 끼고 살았던 영웅 마니아였으며, 워런 버핏은 여덟 살 때부터 경제, 투자, 주식 책을 끼고 살았던 Money 마니아였으며,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외계인 마니아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아이가 열광하는 분야가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응원할 필요가 있다. 황당한 것이든, 돈이 안 되는 분야든 상관없다. 열정을 잃지 않는 한, 아이는 스스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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